58.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7)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8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7)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39)>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의 권위가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직책에 있지 않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공식적인 권위는 조직과 제도에 의해 움직이는 이 세상의 질서를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교회는 영적 유기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유기적 권위가 행사되어야 합니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교회 안에서의 공식적 권위라는 것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행사되어야 하는 유기적 권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 프랭크 바이올라가 쓴 Reimagining Church(다시 그려보는 교회)에서 잘 설명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인용합니다. 다음은 그 책 12 단원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공식적인 권위 대 유기적인 권위

 

유기적인 권위란 무엇인가? 그것은 영적 생명에 뿌리를 둔 권위이다. 유기적인 권위는 전달되는(communicated) 권위이다.

즉, 누가  말씀이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전달할 때 그 사람은 주님 자신의 지지와 지원을 받는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영적 생명을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유기적인 권위의 전달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왜 신약성서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것을 명하는지의 이유이다 (엡 5:21).

그러나 영적 삶에 있어 더 성숙한 사람들이 세속적이고 미성숙한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일관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히 5:14).

 

유기적 권위는 정적인 상태의 직책이 아닌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지시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유기적인 권위는 사람이나 지위에 내재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사람들 안에 또는 그들이 맡은 직분 안에(공식적인 권위처럼) 있지 않다.

그 대신, 유기적인 권위는 사람 개개인 밖에서 행사된다. 이것은 그 권위가 그리스도께 속했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어떤 사람에게 말이나 행동을 명하실 때만 그 사람이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어떤 사람이 오직 주님의 마음을 반영할 때만 말할 자격이 있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순종하라고 할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유기적인 권위는 소통적(communicative)이다.

 

유기적인 권위의 소통적 본능은 바울이 교회를 몸에 비유해서 그리는 골격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머리(모든 권위의 원천인 존재)가 손에게 움직이라고 신호를 보낼 때 손은 머리의 권위를 소유하게 된다.

그렇지만, 손은 그 자체로서는 권위가 없다. 오직 머리와의 교통에 따라 움직일 때만 권위를 끌어내게 된다. 손이 머리의 뜻을 대표하는 한은 그 정도까지의 권위가 손에 있다.

 

우리 신체에서 몸과 관련된 머리의 움직임이 유기적임을 주지하라. 그것은 사람이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똑같은 원리가 영적인 머리와 영적인 몸에도 적용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대표할 때만 영적 권위를 행사한다.

그러므로 유기적인 권위는 신축성과 유동성을 가진다. 그것은 정적이지 않다. 유기적인 권위는 전도되는(transmitted) 것이지, 개선되는(innovative)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철회될 수 없는 소유물이 아니다. 아울러 유기적인 권위는 몸에 의해 평가되고 인정된다.

 

유기적인 권위는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파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믿는자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추측하거나, 물려받거나, 물려주거나, 또는 대신해선 안 된다. 단지 그 권위를 대표할 뿐이다.

이것엔 절대적인 구분선이 없다. 그것에 대한 이해의 결핍이 하나님 사람들 안에서 밝혀지지 않은 혼동과 권력의 남용을 불러왔다.

 

영적 권위에 대해 논할 때, 강조점은 언제나 “영성”이라는 신비적 개념이 아닌 역할수행과 섬김이어야 한다. 사람의 영성에 기초해서 권위를 주장하는 것은 실제로 그 사람 자신을 공식적인 권위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영성”에 관한 주장(실제적인 영성과는 대조적인)이 베일에 싸인 직분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누가 진정으로 영적이라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섬기는가에 따라 그의 영성이 드러날 것이다. 영성은 오직 삶과 섬김에 의해 분별되는 것이지, 영성이 있다고 하는 사람의 끈질긴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섬김과 역할수행에 계속 초점을 맞추는 것이 유기적 교회가 개인을 숭배하는 사교집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보호해준다.

 

 

도움 되는 비교

 

공식적인 권위와 유기적인 권위의 차이점 몇 가지를 떼어놓고 살펴보자.

 

1. 공식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들의 주장이 더 높은 권위의 뜻에 위배되지 않는 한 그들에 순종해야 한다 (행 5:29; 딤전 3:1).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기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들에게 순종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라고 설득한다. 바울의 편지들이 이 원리의 아주 좋은 예이다. 그 편지들은 명령보다는 간청과 호소로 가득하다. 그리고 설득하는 어조가 널려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살펴볼 것이다.)

 

2. 공식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 아래 있는 사람들을 잘못 인도할 때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민수기 18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권위인 제사장들의 어깨에 죄의 짐이 지워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기적인 권위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의 책임을 파기할 수 없다. 교회에서, 믿는 자들은 자신의 행동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따르기로 선택했을 때도 책임져야 한다…

 

3. 공식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권위를 행사하는 대상보다 덜 성숙하고, 덜 영적이고, 덜 의로울 수 있다. 그렇지만 유기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삶과 직결되어 있다. 유기적인 권위는 영적인 삶과 분리할 수 없다…

믿는 자가 교회에서 받는 존중은 언제나 겸손한 섬김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지, 절대로 요구하거나 주장해서 받는 것이 아니다. 진짜 영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위에 영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또는 자신의 영적인 수고나 성숙에 대해 자랑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미성숙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이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능력의 종”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또는 그렇게 스스로를 높이는 비슷한 유의 사람은 그저 한 가지를 증명하는 꼴밖에 안 된다. 그에게는 권위가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교회 안에서 존중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을 믿음직한 종으로 증명한 것이다. 단순한 말로서가 아니라 경험으로 말이다 (고후 8:22; 살전 1:5; 살후 3:10). 그리스도의 몸에게서 받은 인정과 신뢰가 그 사람의 영적 권위에 대한 단 하나의 확실한 평가기준이다.

 

4. 공식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직책을 맡는 동안 그 권위를 소유한다. 그리고 그들의 권위는 그들이 어리석거나 부당한 결정을 내리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행사된다. 예를 들면,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아 있는 동안은 그의 권위를 유지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떠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삼상 16:14; 24:4-6).

반면에, 유기적인 권위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표현될 때만 행사된다. 그래서 만일 믿는자가 머리의 뜻을 반영하지 않는 뭔가를 교회에 권면한다면(그것이 규정된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되지 않을지라도) 그의 권면을 뒷받침할 권위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권위가 있다. 그리고 오직 그분의 생명에서 흘러나오는 것만이 권위를 갖는다.

 

5. 공식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은 사실상 언제나 계급에 의해 권위를 행사한다. 하지만 유기적인 권위는 계급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마 20:25-28; 눅 22:25-27). 사실, 유기적인 권위가 계급과 연결될 때면 언제나 왜곡되고 남용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계급의 이미지를 신약성서의 편지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도권 교회의 리더십 문제는 공식적인 권위를 그리스도인의 관계성들에 추잡할 정도로 단순무식하게 적용한 데서 기인한다. 이런 잘못된 적용은 권위가 만능이라는 사고방식에 뿌리를 둔다.

말할 것도 없이, 공식적인 권위의 모형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로 이식하려는 것은 엄청난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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