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십일조의 문제 (1)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35

십일조의 문제(1)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16)>

 

지난 몇 달 동안 유기적 교회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들을 살펴왔습니다. 그 방해요소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인 생명체로서의 교회가 이 세상의 가게나 기업처럼 운영되는 조직으로 전락한 것으로 시작해서 교회 건물 문제, 주일 성수 문제, 그리고 머리와 지체의 역할 빼앗는 직책으로서의 목사까지 다루었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방해요소인 십일조의 문제에 관해 살펴볼 텐데, 이것도 오늘날 주일 성수처럼 건드렸다가 큰 코 다칠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한국의 목사나 교인들은 주일 성수나 축도나 십일조 같은 것을 건드리면 금방 무슨 신천지나 구원파 같은 이단, 사이비라고 매도합니다.

어물전 망신은 꼴두기가 시킨다는 말이 있듯이 신천지나 구원파 같이 오류로 가득한 사이비 집단이 복음을 제대로 살아가려는 교회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의 판단을 흐리게 해버립니다. 그래서 비성경적이고 비복음적인 현대 교회의 관행들을 건드리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현대 교회의 십일조도 그런 관행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것처럼 교인들을 옭아매어 강박관념 속에 가두고 또 기독교 미신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도 없으므로 꼭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물질로 채워주신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하지 않은 만큼 또는 그 몇배 이상 물질적인 손해를 보게 하신다.”

“십일조를 떼어 먹어서 잘 나가던 가게가 망했다.”

“나는 수입에서10분의 1이상을 떼어 바쳐 하나님을 순종했으니 안심이다.”

“십일조하는 사람만 교회 직분을 가질 수 있다.”

“십일조하는 사람만 교인 자격이 있다.”

등등.

 

우리는 종종 교회 안에서 이런 말들을 듣게 되는데, 이런 말들이 바로 강박관념과 기독교 미신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전제로 해야 할 것

 

십일조에 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전제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도 이 세상의 가정처럼 물질의 필요가 있을 수 있으므로 필요한 만큼 교회의 지체들의 자발적인 헌금 의해 충당되어야 할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그런 자발적 헌금으로서의 십일조를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치려 하는 것이 아님을 주지하기 바랍니다.

 

문제는 십일조를 바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일조 바칠 것을 명령하셨다고 믿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율법처럼 되어 교회의 지체들에게 순종을 강요하고 유기적인 교회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에서 많은 부작용이 파생되는 게 문제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십일조

 

십일조의 문제를 다루려면 우선 십일조가 성서적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오늘날 십일조에 대해 강조할 때 성경에서 자주 인용되는 십일조에 관한 내용을 담은 대표적인 구절들입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 14:17-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 28:20-22)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레 27:3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7-10)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

 

이렇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둘 다에 십일조가 등장하므로 십일조는 틀림 없이 성서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적이긴 하지만 신약적이거나 크리스천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 어디에도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십일조를 바쳤다는 흔적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인들은 무언가에 세뇌되어 아무 생각없이 그들도 당연히 십일조를 했었을 거라고 가정합니다.

 

“뭐라고? 당치도 않은 소리! 예수님께서 명령하셨는데 어디서 그따위 논리를 펴는가???” 대부분 이렇게 항의하겠지요.

위에 인용한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23:23에서 예수님께서 “이것(십일조)도 행하라”고 하셨으니, 이 구절은 제가 이전에 언급했듯이 주님의 명령을 저버리면 안된다는 죄책감을 안기며 써먹기에 적합한 구절일 것입니다.

십일조가 구약성경의 명령일 뿐만 아니라 여기 신약성경에서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므로 우리가 꼼짝 없이 순종해야만 될 명령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십일조 하라는 명령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게 될 것입니다.

 

 

십일조란?

 

그럼 성경에서 십일조란 무엇을 뜻합니까? 기독교인치고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십분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라고 금방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수입에서 십분의 일을 계산해서 교회에 내면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친 것이라는 결론을 바로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십일조가 십분의 일이라는 뜻이긴 하지만 그냥 수입의 십분의 일이 아니라 원래 세 종류의 십일조가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1)    가나안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특별히 따로 택함을 받은 레위 사람들을 위해 바치는 십일조 (레 27:30-33; 민 18:21-31).

2)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절기 행사를 위해 바치는 십일조 (신 14:22-27).

3)    레위인들, 나그네들, 고아들, 과부들을 위해 3년에 한 번씩 바치는 십일조 (신 14:28-29; 26:12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세 종류의 십일조를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 종류를 종합해보면 10 퍼센트(10분의 1)가 아니고 23.3333… 퍼센트(매년 10분의 1씩 두 번, 그리고 3년에 10분의 1 한 번)입니다. 이것이 성서적인 십일조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십일조를 꼭 해야된다고 주장한다면, 원래의 성서적 십일조에 충실해서 수입의 23.3333… 퍼센트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수입의 10분의 1만 바치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십일조는 이스라엘의 세금제도

 

십일조는 쉽게 말하면 이스라엘의 세금제도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쓰이는 용도가 세 가지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바치는 십일조(세금)로 이스라엘의 국가 관리들(제사장 족속 – 가나안 땅을 분배받지 못했으므로)의 생활을 책임지고, 국경일(절기) 행사를 치르고, 가난한 사람들(나그네, 과부, 고아)을 지원했습니다. 오늘날 국가들에서 시행하는 세금제도의 목적과 비슷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의무이지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세금이 자발적인 기부가 아닌 의무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만일 오늘날 한국이나 미국같은 나라들에서 세금이 의무가 아니고 내고 싶은 사람만 내고 내기 싫으면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나라 살림이 전부 마비되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에서도 십일조가 의무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이었다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가 채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일조가 이런 것인데 이것을 유기적이어야 할 교회에 도입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세금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것은 시내산에서 출발한 구약의 이스라엘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해 탄생한 교회를 혼동한데서 비롯된 무지의 결과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유기적인 교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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