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머리와 지체의 역할을 빼앗는 사람 (6)
***이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33
머리와 지체의 역할을 빼앗는 사람(6)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14)>
앞에서 사도와 선지자가 교회의 터를 닦는 사역자임을 살펴보았는데, 이제 에베소서 4:11의 다른 은사들, 즉 복음 전하는 자와 목자와 교사의 역할에 관해 짚고 넘어갈 차례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약성경에는 이 은사들의 기능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추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와 선지자와 함께 복음 전하는 자도 역시 교회의 터를 닦는 사역자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져서 그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은 지체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살고 전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지만 교회의 터를 놓는 데는 특별히 복음 전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필요할 것입니다.
목자와 교사의 은사
그렇다면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가 교회의 터를 닦은 다음에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도록 돕는 은사가 목자와 교사라는 기능입니다. 성도들을 보살피고 가르치는 역할입니다.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장로” 또는 “감독”이라고 불리는 기능이 바로 이 목자와 교사일 것입니다.
사도행전 20:28이 이것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3차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중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 부탁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바울이 장로들을 감독자라고 했고 또 교회를 보살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장로들이 곧 감독이요 목자입니다. 이 단어들이 무슨 전문적인 직책을 뜻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신앙의 연장자로서 교회의 다른 지체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역할을 묘사하는 것이지 오늘날의 목사나 당회원으로서의 장로같은 직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직책이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교회가 이 세상의 조직(organization)과 같다면 당연히 직책(office)이 있어야 할 것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이 흐르는 유기체(organism)인 가족이라면 직책이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을 것입니다.
육신의 아버지에게서 나온 가족 안에 형제들과 자매들이 있듯이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온 가족 안에도 형제들과 자매들이 있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편지들에 “형제들(brethren)” 이라는 말이 무려 130번이나 등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형제들이라고 한 표현엔 물론 자매들도 포함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을 이루는 교회라는 영적 공동체에는 신앙의 연장자들이 다른 형제들에게 형이나 오빠나 누나나 언니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런 역할이 곧 목자와 교사요, 감독이요, 장로입니다. 직책이 아니라 역할입니다.
목자와 교사에 관한 오해
위에 인용한 사도행전 20:28 말씀처럼 목자와 교사는 하나님의 양떼를 보살피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양(예수님의 양)이지 자신의 양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바람직하지 않은 제자훈련운동이나 셀그룹운동에서 ‘목자와 양’의 개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교인들을 거느리는 지도자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영어로 ‘covering’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이것이 성경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실은 성경을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역할을 빼앗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월권입니다.
그럼 신앙의 연장자로서 보살피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형제들을 사랑하고, 그들 앞에서 본을 보이고, 희생하고, 그들을 보호하고, 가르치고, 권면하고,… 가족 안에서 동생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여느 형이나 오빠나 누나가 하듯 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역할이지 무슨 조직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프로그램 돌리듯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가정이지 군대나 회사나 학교나 동호회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들에서 지도자와 관련되어 사용되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타당할까요? 성직자, 담임목사, 당회장, 취임, 위임, 사임, 이임, 은퇴,…
“저는 오늘부터 이 가정을 담임할 형으로 취임했습니다.”
“우리집을 담임할 형 모집 공고를 냈는데 지원자가 50명이나 된다네요. 그 중에서 다섯 명을 추려 설교를 들어보고 인터뷰한 후에 형으로 모실 분을 결정합시다.”
“하나님께서 저를 저쪽 가정의 오빠로 부르셔서 이 가정의 오빠를 오늘 부로 사임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형으로 담임한 가정이 몇 군데나 됩니까?”
“이제 나이가 들어 누나를 은퇴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형을 은퇴하고 제 아들을 형으로 추대하려 합니다.”
말이 됩니까? 그러나 신약성경이 말하는 교회에서 멀어져서 오늘날엔 교회 안에 이 세상의 회사식 사고방식이 들어와 굳어져서 머리이신 예수님을 제치고 교회를 거느리는 CEO 같은 목사가 출현했습니다. 신약성경의 목자와 교사가 오늘날엔 전문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경쟁도 치열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소위 담임목사 자리도 한동안 한국사회에서 유행하던 말인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육이오’를 걱정해야 될 지도 모릅니다. 38세가 퇴직을 고민해야 하는 분계선, 45세에 정년퇴직, 56세까지도 퇴직하지 않으면 도둑, 62세까지도 그 자리를 고수하면 오적에 속한다는 뜻 말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을 본받아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영적 주식회사처럼 운영된다면, 젊고, 카리스마가 있고, 조직관리에 능하고, 수단도 좋고, 학위도 높고, 이중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설교도 유창하게 잘 하는 똑똑한 목사들로 갈아치우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 아님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목자와 교사에 대해 아주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목자와 교사라는 은사는 전문적인 직책이 아니고 신앙의 연장자로서 다른 형제 자매들을 돕는 형이나 오빠나 누나와 같은 역할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목자와 교사와, 그리고 마중물
그럼 목자와 교사가 신앙의 연장자로서 다른 형제 자매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에베소서 4:11 다음에 나오는 구절들이 이것을 명확하게 해줍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에베소서 4:12-15)
간단히 말해서 교회 안의 모든 형제자매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고 깊이 알아서 교회가 그리스도께 걸맞는 수준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 4:19에서 말한 “그리스도의 형상”이 교회 안에 이루어지는 것을 목표로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격려하는 역할입니다.
그것은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지도자가 평생을 혼자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 안의 모든 형제자매가 ‘사랑안에서 진리를 말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 안에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풍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의 말 잘 하는 사람에 국한된 오늘날의 설교와 가르침과 한참 다른 점입니다.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려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모든 지체가 다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할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목자와 교사의 역할은 설교와 가르침의 사역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펌프질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마중물과 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땅속 깊은 암반 아래 있는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펌프질을 할 때 처음에 펌프에 붓는 마중물 말입니다.
물 한 바가지를 부은 다음 펌프질을 하면 속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듯이, 목자와 교사가 그리스도의 복음의 신비를 성도들에게 공급해주면 그들 속에 생명으로 거하시는 그리스도가 생수처럼 올라와 다른 지체들에게로 흘러나가게 되어 결국 이것이 반복되면서 그리스도의 몸이 점점 세워지게 됩니다.
즉, 펌프질은 모든 형제 자매가 하고 목자와 교사는 마중물만 공급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마중물은 그저 성경 여기 저기에 있는 좋은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곧 진리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고 알도록 해주는 말씀이지, 성경 지식이 아닙니다.
목자와 교사가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해주는 마중물 같은 말씀을 알려주면 나머지는 성도들이 길어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콸콸 쏟아져나오게 하는 펌프질은 성도들의 몫이지 목자와 교사의 몫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목사라는 직책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 지체들의 역할까지 빼앗고 있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교인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현대 목사는 모든 지체가 기능을 발휘하는 유기적인 교회가 되는 것을 무의식 중에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직책이 없는 교회가 과연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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