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크리스마스 트리의 팔자를 벗어나려면?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8

크리스마스 트리의 팔자를 벗어나려면?

 

앞에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살아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밑동이 잘리던 날 생명의 근원인 뿌리 쪽에서 볼 때는 죽었듯이 인간도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죽어 있는 상태임을 살펴봤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죽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렇게 죽어있으므로 인간은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죽음의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도덕도, 윤리도, 수양도, 종교도, 율법도, 영적인 어떤 체험도, 심지어 기독교(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님)도, 평생 교회출석 해서 예배하고 봉사하는 것도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입니다.

죽은 인간은 하나님께서 살려주셔야만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

 

이렇게 인간이 죽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었기 때문에 그 해결책은 오직 그 상태로부터 살려내는 것임을 또한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2:16-17, 3:6)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엡 2:1, 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5:24-25)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이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죽어있는 상태, 즉 영적 죽음을 뜻합니다. 물론 이 영적 죽음 때문에 결과적으로 육체의 죽음이 온 것이지만, 위의 성경구절들은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되지 않은 죽은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죽은 상태의 인간과 장식하는 일

 

생명의 뿌리에서 분리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쓰레기통으로 향하기 전 당분간 푸른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온갖 장식을 하듯이, 인간도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므로 영적 쓰레기통인 지옥으로 가기 전 이 세상에 머무는 잠깐 동안 이것 저것 갖다 붙여 장식을 합니다.

살아있는 나무는 뿌리가 목적하는 대로 번성해서 꽃을 피고 열매를 맺기 위함이지 장식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님의 생명을 드러내라고 창조하셨지 장식이나 하라고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장식은 하나님의 생명을 거부한 인간들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창 4:16-24)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가인과 그의 후손들에게 벌어진 일들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위의 내용은 환경만 다를 뿐, 남과 비교하고 경쟁해서 이기려 하는 오늘날의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을 거부한 인간이 죽은 상태에서 올인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장식하는 일, 바로 이것입니다.

성을 높이 쌓아 남들 앞에서 자기 이름을 내고 싶어 하고 (자식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의 영광),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전공을 살려 개발하고(목축업자, 음악가, 엔지니어……),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이나 자기에게 피해 준 사람들을 제거하고, 아내를 둘씩 거느려서 정욕을 채우고 남들 앞에 과시하고……

생명 없는 죽은 인간들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장식하는 일뿐입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장식하다가 죽고, 그 자식으로 태어나서 또 장식하다가 죽고…… 인간이 반복하는 똑 같은 일을 계속 써 내려갈 생각을 하니 지면이 아까운지 성경은 그 장식하는 이야기를 위에 인용한 창세기 4:16-24의 단 아홉 절로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얘기로 대체합니다 (창 4:25 이하). 그래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가봐야 장식하는 일 말고 뭔가 건질 게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팔자를 벗어나는 길

 

만일 밑동이 잘려나간 크리스마스 트리를 도로 살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유일한 방법은 그 나무를 원래의 뿌리에 붙여서 접목하는 것일 것입니다.

죽은 상태의 나무를 뿌리에 연결하여 속에 파이프를 넣고 뿌리에서 수분과 영양분이 들어갈 수 있게끔 통로를 열어주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해서 살아난 나무는 더는 장식을 주렁주렁 매다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닌 산 나무의 구실을 하게 됩니다.

즉, 뿌리의 목적에 충실하게 됩니다. 푸른 잎과 독특한 꽃과 열매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번식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죽은 상태에서 평생 장식만 하다가 끝나는 인간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라는 생명의 뿌리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이 인간에게 흘러 들어가야 합니다.

그 생명의 파이프요 통로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공급 받아 살아난 사람도 산 나무처럼 뿌리이신 하나님의 목적에 충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 받은 생명에 의해 생겨난 열매를 드러내게 되고 하나님의 생명이 확장되는 통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관건은 생명입니다. 오로지 생명에만 초점을 맞추고 올인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글의 앞부분에서 살펴봤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이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연장되고 확장되는 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목적이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를 통해 이루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복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생명을 나타내는 것이 교회라는 유기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가치와 동일한 예수님짜리입니다.

 

 

왜 아직도 장식에 집중하고 있을까?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어째서 아직도 장식하는 것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생명의 뿌리에서 생명이 공급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분명히 예수님을 영접했고, 구원의 확신을 받았고, 영적인 체험을 했고, 병 고침도 받았고, 은사도 체험 했고, 많은 기도 응답도 체험했는데 죽었다니요?

 

이것에 대해서는 일일이 답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이것에 대한 답이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살펴보겠지만, 성경에는 위의 체험을 다 했어도 아니올시다 일수 있다 라고 한 근거가 곳곳에 나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말씀까지 가지 않아도 스스로 테스트 할 수 있습니다. 양심에 손을 얹고 볼 때 자신이 장식하는 것에 기울어 있으면 크리스마스 트리와 똑 같은 팔자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수단인 직업이나 전공이나 학위나 지위가 자신의 존재 가치요 타인 앞에서 자랑거리요 과시거리라면 그것들은 장식입니다.

편리하게 살기 위한 도구인 집이나 가구나 차나 옷이나 취미 같은 것을 통해 은근히 과시하려는 것도 장식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사랑과 돌봄과 교제의 대상인데, 그들을 통해 자신의 못다한 한을 풀어보려 하고 또 대리만족 하려 한다면 장식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소위 영적인 것을 추구해도 장식일 수 있습니다. 기도가 주로 하나님에게 이것 저것 해달라고 비는 것 일변도이면 그게 다 장식을 위한 것입니다.

열심을 내고 헌신을 하고 십일조를 하고 헌금을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이라면 장식입니다. 말이 신앙생활이지 하나님과의 거래를 통해 자기가 바라는 장식을 얻어내려는 것입니다.

교인 숫자나 교회당 건물이나 교회예산이나 선교사 파송 숫자나 교회성장이나 은사나 재주나 학위나 설교기술 등이 자랑거리라면 이것도 장식입니다.

교회의 직분을 조금이라도 감투라고 여기면 그것은 장식입니다. 이런 신앙은 대상만 하나님일 뿐이지 이방잡신이나 다른 종교 믿는 사람들도 다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생명의 뿌리이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 장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죽은 것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것들이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따져보지도 않고 함부로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 안에 기독교 종교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줄 아십니까?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를 뿌리 위에 살짝 올려놓고는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놓은 것과 비슷합니다.

언뜻 보기엔 나무가 서있는 것 같지만 그 속으로 생명이 통하지 않듯,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뿌리이신 하나님의 목적이 통하도록 생명이 흐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 연약하여 실수도 하고 죄도 짓고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생명을 드러내기 위한 산 나무와 같은 존재여야만 예수님짜리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장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크리스마스 트리와 똑 같은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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